법률칼럼 · 가사·상속
제사는 장남이
지내야 하나요?
명절이 지나면 꼭 몇 분씩 찾아오십니다. 아버지 제사를 누가 모실 것인지, 산소는 누가 지킬 것인지를 두고 형제자매가 끝내 갈라섰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듣다 보면 대개 한 문장으로 모입니다. “그건 원래 장남이 하는 것 아닙니까.”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 왔고, 실제로 법원도 한동안 그와 비슷하게 판단해 왔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2023년에 이 대목을 정면으로 바꾸었습니다. 지금은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제사주재자와 제사용 재산이라는 말부터
법에는 ‘제사를 주재하는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줄여서 제사주재자라고 부르지요. 조상의 제사를 이끄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예를 갖추는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제사주재자가 제사용 재산에 관한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유체·유해의 처리 또는 분묘의 관리 등에 관한 의무를 부담하고, 제사에 드는 비용도 현실적으로 부담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권리와 의무가 함께 붙어 있는 지위라는 뜻입니다.
제사용 재산은 일반 상속재산과 따로 취급되는 재산입니다. 금양임야,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금양임야는 분묘를 지키려고 나무를 베지 않고 가꾸는 임야를 말하고, 묘토는 제사 비용을 대기 위해 분묘에 딸린 농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 재산은 누가 가져가게 될까요
상속재산이니 상속인들이 각자의 상속분대로 나누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법은 이 재산만은 따로 떼어 두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사용 재산은 상속분과 관계없이 제사주재자 한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나누는 재산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이어받는 재산이지요.
민법 제1008조의3(분묘 등의 승계)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
조문을 읽으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대상과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임야와 농지에는 면적의 상한이 붙어 있고, 여기에 족보와 제구가 더해질 뿐입니다.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재산은 일반 상속재산으로 돌아가 상속인들이 나누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승계받는 사람이 ‘제사를 주재하는 자’ 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이 조문을 두고 제사용 재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일반 상속재산과 별도로 특별승계를 규정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면서도 사회통념상 정당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특정한 1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지요. 장례방법이나 장지를 두고 다투는 상황에서 공동의 제사주재자를 인정하는 것은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조문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라고만 할 뿐,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공동상속인들이 모여 협의로 정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문제는 협의가 되지 않을 때이지요.
바로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남이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를 대법원이 바꾸었습니다.
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8다248626 전원합의체 판결 — 사안
원고들은 망인의 배우자와 두 딸입니다. 장녀는 1994년생, 차녀는 2000년생이지요. 망인은 배우자와 혼인관계에 있던 중 2006년 다른 사람과 사이에 아들을 두었습니다.
망인이 2017년 4월 사망하자 그 사람이 망인의 유체를 화장한 뒤 유해를 추모공원 봉안당에 봉안하였고, 원고들은 유해를 인도해 달라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은 망인의 장남이 제사주재자라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제사주재자는 우선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로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망인의 장남이, 장남이 이미 사망하였다면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 비로소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정리하였습니다.
제사는 후손이 조상에게 행하는 추모의식이므로 피상속인과 직계비속 사이의 근친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최근친이 여러 명이라면 연령은 특정인을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순위자 사이에서 연장자를 앞세우는 태도는 이미 법질서 곳곳에 있습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6호도 순위가 같은 자녀 또는 직계비속이 2명 이상이면 최근친의 연장자가 우선순위를 갖는다고 정하고 있지요.
최근친의 연장자라고 해서 언제나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장기간의 외국 거주, 평소 부모를 학대하거나 모욕 또는 위해를 가하는 행위, 조상의 분묘에 대한 수호·관리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모의 유지 또는 유훈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등으로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피상속인의 명시적·추정적 의사, 공동상속인들 다수의 의사, 피상속인과의 생전 생활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특별한 사정에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 순서가 앞선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판결에는 별개의견도 있습니다. 대법관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이흥구는 망인의 유체·유해에 대한 권리의무의 귀속에도 민법 제1008조의3이 적용된다고 보면서, 법원이 망인의 명시적·추정적 의사, 생전에 형성한 동거·부양·왕래·소통 등 생활관계, 장례 경위와 그 이후의 관리상태, 공동상속인들의 의사와 협의가 불성립된 경위, 향후 관리 의지와 능력 등을 종합하여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수의견과 달리 여기에는 배우자도 포함된다고 보았지요.
정리하면
- 제사용 재산, 곧 일정 면적 이내의 금양임야와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는 상속분과 무관하게 제사주재자 한 사람이 승계합니다(민법 제1008조의3).
-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의 협의로 정하는 것이 언제나 먼저이고, 협의가 되지 않을 때에만 법리가 개입합니다.
- 협의가 되지 않으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우선합니다. 장남을 앞세우던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 순서가 앞서더라도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거나,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으면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 제사주재자는 권리만 갖는 자리가 아니라 유체·유해의 처리와 분묘의 관리 의무, 제사 비용까지 함께 지는 자리입니다.
이미 몇 해 전에 제사와 산소 문제를 정리해 두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 판결의 법리가 이미 이루어진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일률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고, 개별 사건에서 그동안의 경위와 자료를 놓고 따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협의가 먼저입니다. 형제자매가 모여 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법이 개입하는 순간에는 이미 관계가 상해 있기 마련이지요.
법무법인 양지 대표변호사 강수호
자주 묻는 질문
형제들이 협의해서 장남이 아닌 사람을 제사주재자로 정해도 되나요?
됩니다. 대법원이 정한 최근친 연장자 기준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협의로 정할 수 있다면 누구를 정하든 그 협의가 우선합니다. 다만 뒤에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합의한 내용과 참여한 사람의 범위를 문서로 남겨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배우자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나요?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협의가 되지 않을 때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에서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주재자로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배우자는 직계비속이 아니지요. 다만 네 분의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배우자도 포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협의로 배우자를 정하는 것은 물론 가능합니다.
자녀가 있는데 손자녀가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나요?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라면 직계비속 가운데 촌수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앞섭니다. 자녀와 손자녀는 촌수가 다르므로 자녀가 있으면 자녀 중에서 정해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자녀에게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지는 별도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제사와 분묘를 두고 다툼이 생겼다면
협의가 되지 않는 이유, 생전의 생활관계, 그동안의 분묘 관리 경위가 모두 판단 자료가 됩니다.
법무법인 양지가 사실관계와 자료를 함께 정리해 드립니다.
043-254-0088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개별 사건의 결론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문제가 있으시면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인용한 법령과 판례는 작성일 기준입니다.